#.1
'명박산성', 그 거대한 절망의 벽 앞에 서다. 혹자는 '그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니 어쩔 수 없이 막았다'라고
오히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욕했지만,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논의를 떠나서..
묻고 싶습니다..
그 거대한 벽 앞에 서보셨습니까?
육중하고 차디찬 그 쇳덩이 앞에 서 보셨습니까?
형언할 수 없는 답답함과 우울함에
그 벽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는데
내 손 끝에 묻어나는 것은 질퍽한 공업용 기름이었습니다.
그것이 막으려했던 것이
진정한 자유의 요구이든,
위험한 폭력이든 무엇이었든 간에
그 모든 것을 다 막고, 끊어버리겠다는
'압도적인 의지'는 저를 절망케 했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에도 '평화'와 '비폭력'을 외치며
벽과의 공간을 확보하려고 애쓰던 시민들에서부터
별 생각 없이 그 자리에 나온 보통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저와 같은 절망과 허탈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어제의 감정은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어제의 감정은
답답함과 우울함, 아픔, 슬픔,
그리고
부끄러움...
이었습니다.
#.2
닭장차에서 콸콸 쏟아져 흐르던 휘발유 세 방향으로 나뉘어 행진을 했습니다.
저는 서대문 방향의 행진에 참여했는데,
독립문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자마자
닭장차들이 밀집해서 벽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닭장차 있는 곳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앞의 사람들이 '촛불 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이 없게도 제 발 밑에는 휘발유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지점은 경사진 언덕이었습니다.)
어떤 '과격한 시민이' 닭장차의 밑부분 연료통 뚜껑을 뜯어 달아났다고 하더군요..
어떤 과격한 '시민'이, 수천 수만의 촛'불' 행렬에 '휘발유'가 흐르도록 하고 달아났다는 얘기죠..
어떤 과격한 시민이 말입니다...
순간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위의 고가를 보니
경찰, 전경들이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고 채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 휘발유를 흐르게 하면 어떡해요?' 하며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밑에 있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위에다 항의를 했습니다..
그때 제 바로 옆에는
외국인 기자 2명이 서 있었습니다.
휘발유가 흐르는 그 위에서
그들은 어이없어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제가 들은 대화는 이랬습니다.
"이건 무슨 멍청한 짓이야, 지금 이 밑에 흐르는 건 휘발유라고.."
"이 수많은 사람중에 단 하나의 촛불만 떨어져도 여긴 엉망이 될텐데!!"
"빨리 여길 피해야겠어..."
바로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낯이 후끈거렸습니다.
그들의 눈에
이 상황은 어떻게 비춰졌을까요..
슬펐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프고 우울했던 건
이 모든 말도 안되는 상황의
결과가 뻔할 것이라는 생각.
우리의 모든 행동들에 대한
명쾌하고도 단호한 대답은
이미
명박산성이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Trackback URL : http://xero.tistory.com/trackback/14